플랫폼에서 들어오는 기차를 기다린다. 노란 선 안쪽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바람이 불었다. 제법 눅눅한 바람이 계절을 알린다. 초여름. 우리는 다가오는 이 계절의 시작에 만났었다. 우리 서사의 도입이었다. 의미 없이 구두 굽으로 바닥을 짓이겨본다. 나는 눈 앞에 흩날리는 앞머리를 굳이 걷어내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어딘가에서 자라나 바람결에 ...
소파에 파묻혀 책을 읽고 있던 석진이 진동하는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며 여상스레 목소리를 냈다.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11시. 근래 들어 귀가가 늦다. "지금 들어온 거야?" -네, 방금. 너무 힘들어요. "어이구, 고생 했어." 태형은 늘 집에 들어오면 석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오랜 습관이다. '오랜'. 그건 이십 대 초반부터, 연인...
이건, 살아도 산 게 아니야. 우리는 저층 아파트에 살았다.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의 특성상 집과 집 사이가 먼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닭장과 같은 곳에 살았다. 옆집에는 흑인들이 살았고 우리는 그들을 자주 'black'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너와 나는 항상 묶여 'bitches.'라고 칭해지곤 했다. 우리의 인사였다. 좁아터진 집의 바닥...
우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배경 이미지를 첨부하기 위하여 노트를 올립니다(ㅋㅋㅋㅋㅋㅋㅋ). 더불어 질문도 함께 후려치기 위해서(후려치다니..?) 걍 재미로 읽어주세요! 0. <Born to burn>은 제목의 워딩부터 석진이와 태형이를 가리켜요. 동질의 인류로 태어났지만 모음으로 다른 뜻이 되죠. 모음, 모성(母聲)이라고도 하잖아요. 실제로 애...
모텔 프런트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태형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한국 가고 싶어? 거기에 뭐 있는데.’ ‘한국말이요.’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군.’ 김석진은 그 말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본다. 친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열 살 때가 아니다. 북동부로 이사 와 불편하고도 낯선 생활을 하던 초반이었다. 한국에서 나온 지 몇 년 만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김석진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엄마가 유별났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자랐다. 제 생각에는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기러기의 자식이 되었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열 살 짜리가 아빠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전혀 몰랐다. 그 때 본 아빠의 얼굴이 평생의 한이 될 거라곤. 우리 아빠는 분명 나...
VACANCY 다 낡은 네온사인 간판은 낮에만 보인다. 사막에 밤이 찾아오면 깜박이며 없는 단어를 만들어내다 하나씩 죽어가는 알파벳들이다. ‘브이V’로 시작되는 단어의 앞머리에 ‘NO’라는 단어의 네온사인이 들어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막의 한낮은 끔찍하게도 더웠다. 물이 없다면 탈수가 오기 십상이다. 김태형은 사막 한 가운데에 살았다. 품이 큰 하...
겁많은 뷔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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