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은 금세 물기가 차오르는 석진의 눈을 들여다본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깜박이지도 못 하는 눈에선 곧 찰박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형이 사는 곳엔 뭐가 있어요?’ 그때. 도리어 그때가 당신을 알기 더 쉬웠을 텐데. 왜 그때 당신의 심연을 보지 못 했을까. 이후로 수도 없이 당신을 보고 그렸는데…. 왜 나는 이렇게 찰박이는 눈동자를 들여다볼 생각...
‘형은 가끔가다 인디언인 것처럼 굴더라.’ 석진은 북동부를 넘어가기를 꾸준히 경계했다. 해안선에 매달리듯 기어서 가는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가 그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의 동부였다. 꾸준히 경계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건 과거 본토의 원주민이 강제 이주한 것처럼 석진이 서부로 이동한 것과 동일한 이유였다. 태형이 예정에도 없는 알칸사에 왔을 때 ...
태양이 떴다. Reborn : ZERO to burn “에이, 오늘도 공쳤네.” 석진이 모텔 간이 테이블 위에 다리를 꼬아 올리며 말했다. 오늘까지 매물로 내놓은 그림이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아 짜증이 난듯했다. 그의 기분처럼 석진은 짜증스레 뒷머리를 턴다. 가늘지만 질긴 손목에 여러 개의 실팔찌가 흔들거렸다. “그러니까 도시를 옮겨야 한다고 했잖아. 텍사...
석진은 계속해서 걸었다. 딱히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그래도 걷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꼭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흩날리는 작은 눈송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분명 하늘에서 내려 저 모르게 쌓인 눈송이들의 무게를 알 리가 없다. 석진은 그 눈들이 제게 닿아 녹지 않고 소복소복 쌓이는 것을 느꼈다. 작고 가벼운 것들이 쌓이고 쌓이지만 녹아 ...
찬 공기. 태형은 저녁 약속을 위해 코트를 꺼냈다. 날이 추워지면서 꼭 한 번은 감기에 걸리는 편이라 터틀넥도 꺼내 입었다. 코트를 걸치고 나서도 한참을 거울 앞에서 떠나지 못 하는 것이 무언가 평범한 날은 아닌듯싶다. 집을 벗어나 전철역으로 가는 도중에도 태형은 유리로 비치는 본인의 모습을 계속해서 체크한다. 걸음걸이에 흐트러지는 앞머리를 계속해서 매만지...
“와, 얼마 만이지?” “4개월?” “별로 안됐네.” 여름 끝에 만났더랬다. 태형의 기다림이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낯설고 어두운 골목에 약속 시각보다 늦게 나타난 석진은 그의 머리만큼 까만 맥 코트를 입고 있었다. 태형이 마지막으로 본 때보다 머리가 많이 자라있다. “왜 번화가에 있는 곳이 아닌 이런 곳이에요.” “여기가 사람 없고 조용해. 가자.” 툭...
0. 계속될 이야기 우중충했던 하늘이 며칠간 비를 내리며 가지고 있던 무채색을 다 빼냈다. 하늘이 맑은 색으로 가득했고 들이마시는 공기는 꼭 박하향 같이 시원하다. 하늘을 보며 거실에 누워있는 태형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고개를 살짝 돌려 옆에 함께 누워 있는 석진을 본다. 잔다. 야 아무리 소꿉친구여도 그렇지, 남자친구 옆에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자고 있기...
‘태형아, 석진이 예쁘지.’ 남아있는 것 중 김석진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아쉽게도 우리 엄마의 목소리다. 유치원 때의 모습이 이젠 사실 가물가물한데 어딘가 반짝반짝했던 꼬마였던 건 확실했다. 김석진 네 손은 같은 꼬마인 내가 느끼기에도 작고 말랑거렸다.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아까부터 옷과 머리는 다 젖은 지 한참이었다. 유독 눈만 뜨거웠다. 나는 눈물...
올해 초 겨울이었다. 너는 네 목도리를 내게 칭칭 감아주었다. 네 목도리가 내 목을 따스하게 조르며 코 아래까지 전부 차올랐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내가 죽을 줄 알았다. 너의 냄새로 질식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Part I : 김석진 “나 여자 친구 생겼어.” “엥?” 하복을 단정하게 입은 김태형이 더 대꾸하지 ...
겁많은 뷔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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